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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011.07.05 칼럼연재 - 삶과 문화] 길어진 사춘기

우리 집 거실창 너머엔 매년 4월이 되면 짧고도 화려하게 하얀 꽃을 피우는 목련나무가 서 있다. 그 나무가 작년의 강풍으로 이쪽저쪽 가지가 잘려나가고 반 토막이 났다. 그런데 올해는 키가 반으로 줄어든 나무가 스스로 무성한 가지 뻗기를 하고 있다. 여름인데도 몇 송이 꽃도 피우고 있다. 이런 제2의 탄생을 지켜보면서 나무의 생명력과 성장저력에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요." 그동안 부모 말에 순종하고 무럭무럭 잘 자라던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달라진 행동을 보이면 부모들은 무척 당황한다. "도대체 생각이 없다. 네 머리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고 이렇게 자꾸 잔소리만 하는 엄마아빠가 정말 밉다. 그렇다. 우리들 집집마다 좌충우돌하는 10대 아이들과 크고 작은 전투를 매일 치루는 '사춘기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아이들은 왜 갑자기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달라지는 것일까? 내 아이의 사춘기 변화는 과연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될까? 1904년 심리학자 스탠리 홀은 <청소년기>라는 2권의 책을 발간하면서 "청소년은 변화하는 과정 중에 있으며 정서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혼란을 겪는 독특한 집단"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뇌 영상 첨단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자라고 있는 사춘기 아이들의 뇌를 직접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중학생이 될 무렵이면 아이들은 기본적인 사고능력을 갖추게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춘기 뇌를 직접 들여다보니 사춘기 뇌 발달은 훨씬 오랫동안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춘기 뇌는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어른과 같은 상태로 성숙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과거에는 사춘기 문제를 호르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면 이제 뇌 과학으로 사춘기 행동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테면 청소년의 충동적인 행동은 뇌의 전두엽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뇌의 가장 앞쪽에 있는 전두엽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기능을 한다.

사춘기 뇌는 어른 뇌와는 다르다. 사춘기 뇌는 여름나무가 무성한 가지를 뻗듯이 폭발적으로 많은 양의 뇌세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동시에 그 세포연결의 15%를 가지치기로 스스로 잘라낸다. 아이와 어른의 뇌에서 1~2%정도의 세포를 가지치기를 하는 것에 비해 사춘기 뇌는 상당한 변화를 겪는다. 마치 나무가 가지를 뻗고 또 어떤 부분은 스스로 잘라내면서 자기 모양을 만드는 것처럼 사춘기 뇌는 자신의 모양을 만들어간다. 하루는 갑자기 어른스러운 말을 하다가도 다음날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어린아이로 돌변하는 것은 이런 사춘기 뇌의 변화 때문이다.

부모들은 아이돌스타를 좋아하고 인터넷을 비롯한 멀티미디어에 빠져있으며 호기심으로 위험한 일을 일삼는 '10-24'사춘기(10~24세로 길어진 사춘기)뇌의 비밀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부모들은 제2의 탄생기를 겪고 있는 사춘기 자녀의 행동을 반항이라고 무조건 억누르면 안 된다. 그리고 폭우와 강풍에 휩싸여도 쓰러지지 않는 밑둥이 튼튼한 나무로 키우기 위해 자녀를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고민해야 한다. 사춘기 뇌 발달에 중요한 자양분은 공부뿐만 아니다. 감성과 사회성을 발달시키는 운동, 자원봉사 활동, 예술 활동과 같은 오감을 자극하는 다양한 경험도 중요하다. 이런 체험을 통해 아이들은 풍성한 가지 뻗기와 또 자신만의 가지치기 과정을 거쳐 '나-뿌리 깊고 멋진 나무'로 자라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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츨처: 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opinion/201107/h2011070421334681920.htm&ver=v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