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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12.9.1] '모친살해 우등생아들' 진단

지난달 29일 여야 국회의원 15명이 한 존속 살해범을 위한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어머니를 살해한 범죄자 아들에 대해 그들은 왜 선처를 호소한 것일까.

2011년 3월 20일 아침의 비극

평온한 일요일 아침, 서울의 한 빌라. 고등학생 아들이 안방에서 잠든 어머니(51)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밤새 어머니에게 골프채로 맞은 엉덩이는 피로 얼룩져 있었고 손에는 흉기가 들려 있었다. 5분 뒤 아들은 흉기로 어머니를 찔렀다. 하지만 어머니는 곧바로 숨지지 않았고, 아들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내 둘 다 기진맥진했다.

어머니는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아들만 걱정했다. “내가 죽는 건 괜찮은데 이러면 네 인생이 망가진다.” 하지만 아들은 바닥에 떨어진 흉기를 집어 들어 어머니를 살해하며 마지막 말을 던졌다. “엄마 미안해. 엄마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다음 날, 아들은 시신을 안방에 둔 채 학교에 갔다. 당시 부모는 이혼 숙려기간이어서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주변에는 “어머니가 해외여행 갔다”고 둘러댔다. 시간이 갈수록 냄새가 심해지자 아들은 본드로 안방 문틈을 메웠다.

범행 후 8개월. 이윽고 들통이 났다. 아내의 실종을 수상히 여기던 아버지(53)가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아버지는 “아이가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 ‘아빠는 날 버리면 안 된다’고 말한 뒤 방 안에 엄마가 있다고 했다”며 “그 순간을 평생 잊을 수 없다”고 울먹였다.

전교 2~3등 해도 야단 맞아

아들은 소문난 우등생이었다. 전 과목 1등에 ‘올 수’를 받기도 했다. 성적 우수상은 물론 논술과 영어경시대회, 연합 학력평가상 등을 휩쓸었다. 1년간 아일랜드로 유학도 다녀왔다.

그를 가르쳤던 중학교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영어를 월등하게 잘했다”며 “도서실에서 책을 많이 읽는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웅변에 스케이트·태권도·모형 비행기, 심지어 줄넘기까지 상을 받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기대치는 더 높았다. ‘전국 1등’. 전교 2~3등을 해도 야단을 맞았다. 집안 벽에는 1년치 공부 계획표가 붙어 있었다. 고모는 “아이 엄마는 아들을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팔방미인으로 키우고 싶어했다”며 “한국 사회에서 수직 상승하기 위해 엄마와 아들이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몹시 불안했다”고 말했다.

자살까지 시도한 아들

아들이 외국어고 입학에 실패하면서 상황은 악화됐다. 아버지는 “아이 엄마가 재떨이를 던져 아이 눈에 상처를 내기도 했다”며 “아이가 외고에 응시했다 낙방하자 본격적인 체벌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아들에게는 특별한 바지가 있었다. 체벌용 트레이닝복이었다. 아들은 “엄마가 ‘준비하라’고 하면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맞을 자세를 취했다”며 “트레이닝복은 피와 진물 탓에 빨아도 늘 얼룩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비명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입에는 수건을 물어야 했다.

친구 박모(19)군은 “목욕탕에서 보니 여기저기 맞은 상처가 있었고 집 안 신발장 옆에는 피 묻은 골프채가 있었다”며 “설마 골프채로 맞았느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말해 놀랐다”고 증언했다. 아들은 가위로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발각돼 매만 맞았다.

체벌과 질책을 피하기 위해 아들이 찾아낸 방법은 성적 위조였다. 전국 4000등인 성적을 전국 62등으로 바꾼 것이다. 성적표 글씨와 같은 크기로 ‘62’를 인쇄해 오린 뒤 ‘4000’ 위에 붙이고 컬러 복사를 하는 수법이었다. 아들은 “그런데도 엄마는 전국 1등도 할 수 있다며 끝없이 닦달했다”고 털어놨다.

아들이 범행을 저지른 날은 학부모 총회 전날이었다. 성적을 위조한 비밀이 들통날 위기에 몰린 것이다. 사흘간 매까지 맞은 극한 상황에서 아들은 결국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했다. 죽어가는 어머니에게 얘기했던 ‘엄마가 모르는 것’에 대해 아들은 “성적을 고친 사실과 실제 성적”이라고 말했다.

편부 슬하서 자란 엄마의 콤플렉스

아들에 대한 끔찍한 사랑의 흔적은 여기저기 남아 있다. 집에서는 수십 개의 동영상과 카세트테이프가 발견됐다. 아들이 여덟 살 때 엄마가 캠코더로 찍은 영상엔 “엄마, 고릴라 인형과 함께 찍어줘”라며 재롱을 부리는 아들의 얼굴과 기쁨에 들뜬 어머니의 목소리가 함께 담겨 있다.

어머니는 아들이 부르는 노래를 녹음했다. 테이프마다 짧은 편지도 남겼다. ‘우리 예쁜 아들의 목소리를 왜 진작 녹음해두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위로해야겠다’는 글이 시선을 붙든다. 어머니의 한 친척은 “아들이 피아노 치는 소리도 녹음해뒀다”며 “아들이 커서 들어보라고 남긴 것”이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남편과의 불화가 어머니의 모습을 변화시킨 듯하다. 아버지는 “신혼 첫날부터 싸웠고 다툼이 끊이지 않아 집을 나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혼에 합의했다. 어머니는 학창 시절 일본에서 혼자 아르바이트를 3개씩 하며 대학원을 다닐 정도로 독립심이 강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조금씩 변해갔다. 김영화 강동소아정신과의원 원장은 “어머니 역시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랐고 아버지가 아들을 편애하면서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며 “자기 콤플렉스와 열등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아이를 강하게 몰아붙였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검찰 15년 구형 … 1심서 징역 3년 선고

하지만 세간의 동정론과 달리 검찰은 1심과 2심 모두 징역 15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하는 과정과 살해한 이후에 보인 일련의 행태가 선처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우선 검찰은 아들이 범행 이후 여자친구와 함께 강릉으로 여행을 떠난 점을 지적한다. 엄마의 시신을 안방에 둔 채 친구들을 불러 라면을 끓여먹은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범행 이후 수십만원짜리 비비탄 총과 활을 구입하는 등 평소 하고 싶었던 일들을 벌인 정황도 찾아냈다. 이런 것들이 우발적으로 범행을 하고 가책에 괴로워하는 아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고 의심한다.

 하지만 변호인의 해석은 다르다. 이명숙 변호사는 “강릉은 아들과 어머니가 자주 여행을 갔던 곳으로 어머니가 그리워 찾아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총기류 등을 수집한 것은 범행 이후 불안감과 두려움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덧붙였다.

아들을 위해 탄원서를 쓴 의원들은 아들도 ‘또 다른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은 “아들은 아동학대 후유증 때문에 순간적으로 자기를 억제하지 못하고 분노를 표출한 것”이라며 “과연 이 책임을 이 아이에게만 물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아들은 1심에서 징역 3년~3년6개월형을 선고받고 항소심 선고를 기다리는 중이다. 구치소에선 “엄마를 죽이고도 낮은 형을 받았다”는 이유로 다른 소년범들에게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참회를 하고 있다는 아들은 얼마 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문득 부모와 학부모의 차이에 관한 글귀를 적었다. “부모는 함께 가라 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 한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을 꿀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글. 아들의 편지 문구를 빌려 오늘의 엄마·아빠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부모인가, 학부모인가.”

성화선 기자 ssun@joongang.co.kr

링크: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771/9206771.html?ct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