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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011.08.16 칼럼연재- 삶과 문화] 울란바토르의 외갓집

몽골의 울란바타르는 대한이의 외갓집이다. 6년 전 대한이 엄마는 몽골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왔다. 그리고 결혼 직후 한국말을 제대로 할 수 없던 때 아이를 갖게 됐다. 아이가 태어나 옹알이를 시작하면서 몽골말로 놀아주고 싶었지만 시부모와 남편은 아이는 한국 사람이니 절대 몽골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대한이 엄마는 아이를 키울 때 아예 입을 다물었다.

대한이는 자라면서 말이 늦고 이유 없이 심하게 떼를 썼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지나치게 경계했다. 소아정신과에서 선천적인 자폐가 아닌데도 자폐 증상을 보이는 '유사자폐증' 진단을 받았다. 유사자폐증은 아기를 돌보는 사람이 우울하거나 미숙해서 기를 때 충분한 자극을 주지 않아 생기는 문제다. 선천적인 자폐증과는 달리 적절한 교육과 치료로 호전이 되는 질병이다.

대한이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에서 다문화가정 지원으로 실시하는 언어치료도 받고 있다. 아직은 친구들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지만 하루하루 나아지는 모습에 부모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올해 중학생이 된 민국이네도 엄마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다문화가정이다. 초등학교 때도 그랬지만 이제 중학생이 된 민국이는 학교공부를 제대로 따라갈 수가 없다. 아이들이 바보라고 놀리고 따돌려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중얼중얼하면서 혼자 말하고 노는 버릇도 생겼다.

민국이는 지능지수가 높은데도 학교공부를 따라가지 못하는 '학습장애' 진단을 받았다. 어린 시절부터의 언어발달 지체가 원인으로 후천적인 학습장애였다. 민국이는 병원을 다녀간 후 자신이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돼 얼굴이 무척 밝아졌다.

최근 수년간 우리사회에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농촌에서 태어나는 신생아의 40%는 다문화가정 아기들이다. 교육과학기술부 통계에 따르면 초중고에 다니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12만여명에 이른다. 최근 4년 사이 5배가 늘었다. 지금부터 10년 뒤에는 우리나라 청소년 다섯 명 중 한 명이 다문화가정 출신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중학생이 되면 학교 진학률이 40% 정도, 고등학생이 되면 20% 정도로 떨어진다. 이는 10년 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상당수가 학습능력이 부족하고 주변에서 따돌려 학교 밖에서 이탈된 생활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내가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다문화가정의 청소년들은 이에 더해 '나의 뿌리는 어디인가,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하는 혼란이 가중된다. 이런 정체성 혼란은 시작일 뿐이다. 따돌림, 학교 부적응, 등교 거부와 같은 문제는 다문화가정 청소년들을 좌절에 빠트려 교문 밖을 떠돌게 만든다.

대한민국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 조화롭게 살아가야 할 다문화시대에 진입했다. 많은 다문화가정에서 외국인 엄마의 모국어 사용을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아이가 3세 이전 말을 배울 때는 엄마가 적극적으로 말을 많이 시키고 신체적 자극을 주며 놀아줘야 한다. 엄마가 한국말이 익숙하지 않을 때는 자신의 모국어로 아이에게 말을 해야 한다. 중요한 애착형성 시기에 한국말을 못한다고 입을 다무는 것은 아이의 정서 발달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우선 남편과 시부모가 생각을 바꿔 아내와 며느리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존중하고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출처: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opinion/201108/h2011081521073981920.htm&ver=v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