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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12.5.1 기고/김영화- 레이디 가가와 왕따 없는 세상]

팝의 여왕, 시대의 아이콘, 패션 리더. 화려한 수식어가 이름 앞에 놓이는 레이디 가가의 두 번째 내한공연이 27일 열렸다.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자’는 메시지를 주는 ‘본 디스 웨이(Born this way·이렇게 태어난 걸 어떡해요)’가 공연 주제였다. 필자가 레이디 가가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사재를 털어서 ‘본 디스 웨이’ 재단을 설립해 왕따 청소년들을 돕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가가는 ‘왕따는 증오범죄로,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려 2000만 팔로어에게 전파했다.

레이디 가가는 자서전에서 뉴욕의 가톨릭계 여고에 다닐 때 ‘이상한 아이’로 낙인찍혀 철저히 왕따당한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실제로 병원에서 가해학생들을 상담하면 대부분 ‘장난’으로 친구를 괴롭혔다고 한다. 최근 경북 영주에서 발생한 학교폭력 피해 학생 자살사건도 가해자들은 ‘장난으로 했을 뿐’이라고 가볍게 여겼다. 레이디 가가에게는 학창시절 친구들이 장난으로 내뱉은 욕설의 상처가 지금도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다. 자신의 고통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에 재단을 설립해 왕따 청소년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싶어 한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A는 등교 거부 문제로 병원을 찾았다. 중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자기들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서 왕따를 시켰다. 이 사실을 부모와 교사에게 알렸으나 오히려 친구들의 괴롭힘이 더 심해져 학교를 중퇴하고 말았다. 결국 검정고시로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막상 등교하려니 옛날 생각이 떠올라 학교 가기가 두렵다고 했다.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한 뒤 아무도 자신을 도울 수 없다는 생각에 자살충동까지 느끼게 됐다. 실제로 폭력 피해학생 3명 중 1명꼴로 자살을 생각한다.


최근의 학교폭력 추세는 과거와 달라졌다. 학교폭력에 관여하는 나이가 점점 어려져 초등학교 5, 6학년 때 처음으로 학교폭력을 경험하는 학생이 가장 많다는 점,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왕따가 기승을 부린다는 점이 그렇다. 사이버 세상에서 친구를 멋대로 놀리고 마구 괴롭히는 일이 놀이처럼 벌어지고 있지만 어른들의 손길이 닿지 않아 드러나기 어렵다. 함께 어울려 다른 친구를 괴롭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상대를 바꿔 그룹 내 한 명을 표적 삼아 괴롭히기도 한다. 이처럼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눈에 띈다.

학교폭력과 집단따돌림 문제는 20년 전부터 지구촌 곳곳의 커다란 이슈였다. 영국 정부가 15년에 걸쳐 실시해 성공적이라 평가받는 학교폭력 예방책을 보면, 결국 학교폭력 문제도 예방교육이 최우선이다. 학교폭력 가해학생과 피해학생뿐만 아니라 친구가 따돌림을 당하는데도 돕지 않고 못 본 체한 학생들까지 교육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무엇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주변에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내면화할 필요가 있다. 이 사례는 잠재적인 가해학생을 포함해 왕따와 관련될 수 있는 모두가 철저한 예방교육의 대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학창시절 왕따 피해자였던 레이디 가가는 지금은 ‘신세대 대변인’을 자처한다. 이번 내한공연은 가사와 무대의 선정성을 이유로 청소년 유해판정을 받아 중고교생은 공연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왕따를 딛고 성공한 레이디 가가가 노래로 왕따 방지 캠페인을 벌이는 그 마음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리의 의견에 따르지 않으면 배척하고 약자를 배려하지 않아 왕따를 조장하는 우리의 문화적 풍토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 그냥 넘어가기도 했던 ‘성희롱’ 문제가 오늘날 우리사회의 주요 이슈가 된 것처럼 만연한 ‘왕따’ 현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부터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다.

김영화 강동소아정신과 원장

출처:http://news.donga.com/3/all/20120501/459104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