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일본에서 건너온 ‘중2병’이라는 말이 크게 유행했다. 15세 안팎인 중학교 2학년은 본격적인 사춘기로 이 연령대에서 겪는 심리적 변화를 ‘중2병’이라는 신조어로 표현한 것이다. ‘중2병’ 테스트라는 것도 있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뭐든지 네거티브하게 보는 성향이 깊다’ ‘주먹으로 벽을 치거나 가래침 뱉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언제나 무뚝뚝한 표정으로 남들을 바라본다’ ‘인수분해 따위가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샐러리맨은 되고 싶지 않다’와 같이 매사에 자신은 특별하다고 여기고, 세상에 대해 불만을 품고,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중2병’의 특징이다. 어찌 보면 사춘기의 기본적인 성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중2병’에 많은 이들이 열광한 까닭은, 사춘기라는 용어가 ‘2차 성징’과 같은 신체적 변화에 치중했다면 ‘중2병’은 자의식, 반항, 불안, 냉소, 고독과 같이 심리적 변화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중2병’에 걸린 어른이 늘고 있는 현실에 있다. 실제 국내에서는 ‘중2병’이 나이에 관계없이 자의식 과잉, 무개념, 허세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중2병’ 유행과 사춘기의 연장 김영화 서울 강동소아정신과 원장(53)은 일찌감치 사춘기가 연장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해, 지금까지 밝혀진 연구 결과와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부모를 위한 지침서인 ‘사춘기 뇌가 위험하다’(해피스토리)를 썼다. “흔히 12~18세 사이에 있는 10대를 청소년이라고 하고 이 시기를 사춘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춘기가 만 10세에서 24세까지로 늘어났어요. 신체적으로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시기는 점점 빨라지고 있죠. 여아는 10세, 남아는 11세 정도면 사춘기가 시작돼요. 과거에 비해 영양 상태가 좋아서 신체적으로 일찍 성숙하고, TV와 인터넷 등으로 시각적 자극을 많이 받는 것도 사춘기가 빨라지는 원인이죠. 그러나 사춘기가 빨리 시작됐다고 해서 빨리 끝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요즘은 20대 중반까지 사춘기가 계속됩니다. 현대사회의 핵가족화, 과보호, 교육 기간의 연장 등이 사춘기가 길어지는 원인입니다. 이것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에요.” 이러한 사실은 사춘기 청소년들의 뇌를 촬영한 결과로 입증됐다. 김 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과거 심리학자들은 아이들이 중학생이 될 무렵이면 기본적인 사고 능력을 지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뇌 영상촬영기술의 발달로 사춘기 청소년의 뇌를 직접 들여다 봄으로써 청소년기의 뇌 발달이 훨씬 오랜 기간 동안 진행돼 20대 중반이 돼야 뇌가 비로소 어른과 같은 상태로 성숙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요즘 청소년들의 뇌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사춘기 뇌의 특징을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사춘기 뇌는 계속 자라고 있다 아이와 어른은 뇌에서 1~2% 정도의 세포를 가지치기한다. 하지만 청소년기의 뇌는 엄청나게 많은 세포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세포 연결의 15% 정도를 가지치기로 잘라낸다. 따라서 많은 양의 정보를 받아들이면서도 한편 잃어버리기도 한다. 하루는 갑자기 어른스러운 말을 하다가도 다음 날은 그 생각을 잊고 다시 어린아이가 되는 것은 이러한 뇌 세포의 변화 때문이다. 2 사춘기 뇌는 ‘제2의 탄생기’에 있다 |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를 이해하려면 이 시기 뇌의 변화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김영화 원장.
사춘기 뇌는 계속 자라고 있을 뿐 아니라 구조도 성인의 뇌와 다르다. 전두엽은 뇌의 가장 앞쪽에 자리 잡은 뇌로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먼저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곳이다. 또 충동적이고 부적절한 행동을 하기 전에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청소년기가 되면 이 전두엽이 발달하기 시작해 20대 중반에 완성된다. 그전까지는 원시뇌가 작용하는데 이 뇌는 원시시대부터 주위의 위험을 알아차리고 자신을 보호하는 생존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 사춘기 청소년들이 정리정돈이나 의사 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며 참을성이 없는 것은 이러한 뇌의 구조적 변화 때문이다. 3 정신 장애, 부모 탓이 아니라 뇌 기능 장애다 과거 정신분석 이론 중심의 정신 장애 연구는 부모의 잘못된 양육 방식이나 어릴 적에 받은 마음의 상처에 의해 아이들이 심리적인 고난을 겪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최근 뇌 과학자와 정신과 의사들이 뇌신경을 분석하고 연구한 결과, 뇌에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정신 장애를 겪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우리 몸속에 분비되는 엔도르핀이나 세로토닌 같은 신경 전달 물질이 뇌신경 세포를 자극해 개인의 기분과 감정은 물론이고 행동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므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학습장애, 틱장애, 불안장애와 같은 뇌 기능 장애를 숨기거나 방치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진단을 받고 치료를 해야 한다. (계속) |